안양문화원 아카이브

안양문화원의 역사와 활동을 증빙하고
안양문화원 사업, 지역학 연구 및 지역 기반 문화사업 등에 활용을 목적으로 구축하였습니다.

안양문화원의 역사와 활동1

아카이브 자료로 보는 안양문화원의 역사와 활동 1

- 신축 원사 이전까지의 이야기 -

문화원 : 각 지방의 향토문화창달을 위하여 일정한 시설을 가지고

문화 및 사회교육사업을 실시하는 비영리 특수 법인체(출처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우리나라는 35년간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광복을 이루어냈지만, 남북 분단과 미군정기, 6.25 전쟁으로 인하여 오랜 기간 역사적 혼란기를 겪으며 민족 문화가 단절되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 왔다. 이에 지역에 대한 문화의식을 가진 향토사가들이 파괴된 국토와 민족 문화를 재건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바로 문화원이다.

안양에 문화원이 생긴 것은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되기 전인 1970년으로 안양문화원은 2022년 올해로 창립 52주년을 맞이하였다. 안양문화원의 역사와 활동을 증빙하는 아카이브 홈페이지가 구축된 만큼, 첫 번째 아카이브 큐레이션 스토리로 ‘아카이브 자료로 보는 안양문화원의 역사와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안양문화원의 역사는 안양문화원의 사무실이 있던 건물의 이전사로 구분할 수 있기에 각 건물이 속해있던 시기로 나누어 간략하게 서술하며, 전체적인 내용이 긴 관계로 현재 안양문화원 원사 신축 건물로 이전하기 전후를 기점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안양시민회관(구 읍민관) 시기(1970~1987)

▶ 1968년 읍민관과 읍민관 내에 있던 사무실 모습. 읍민관은 1973년 안양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안양시민회관으로 이름이 바뀐다. 

        (출처 : 左 안양시청, 닐 미샬로프 촬영/ 右 안양문화원)

1970년 1월 10일 지역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창립총회를 마치고 읍민관 3~4평 되는 분장실에 간판을 내걸며 안양문화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초대 원장으로는 이상윤 씨가 취임했는데, 이후 안양읍장으로 발탁되어 원장직을 사퇴하고 초대 사무국장도 다른 곳으로 취업하게 됨에 따라 안양문화원은 1년도 되지 않아 문을 잠그게 된다. 문화원이 다시 문을 열게 된 것은 1971년 11월로 당시 안양1동 교육청 대회의실에서 임시 총회를 열어 박경재 원장이 취임하였으며, 1972년 5월 15일에 「지방문화사업조성법」에 의거하여 문화공보부 장관 허가를 얻어 안양문화원이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었다.

1973년 9월에 박경재 원장이 사퇴함에 따라 시민회관에서 ‘안양문화원 재건을 위한 임시총회’가 열렸고,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선임된 김정대 씨가 1대 원장의 잔여임기를 포함하여 5대 원장까지를 역임하며 문화원의 큰 발전을 이루어낸다. 안양문화원은 당시 안양지역의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최초의 법인격으로 관악백일장, 관악문학의 밤, 관악사생대회, 관악미술전람회, 관악음악제 등 예술분야와 관련된 폭넓은 사업을 펼쳐 예술진흥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옛 문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 승화시키기 위한 전통문화사업으로 단오제를 시작으로 향음주례 재현 행사, 전통혼례 등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중 현재 안양시 시민대상의 시초인 ‘안양시 애향시민상’, 안양시 종합문화제로 시작한 ‘안양만안문화제’, 향토문화종합문화지로 시작한 본 책자인 『안양문화』의 발간이 현재까지도 계승, 발전되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 안양시립도서관 시기(1987~1990)

▶ 안양시립도서관과 이병택 원장의 현판식 모습

1987년 제6대 이병택 원장이 취임하면서 안양시립도서관 2층의 30평 정도 되는 곳에 사무실을 이전한다. 이때에 특기할만한 활동으로 ‘안양만안답교놀이’의 복원을 들 수 있다. 답교놀이는 전국 각지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 안양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단절되었다가 원로들의 고증을 통해 전문가에 의해 복원되었다. 단절된 지역문화유산의 조사와 복원 내용은 『안양문화』 제6호의 특집으로 실려 안양에서의 답교놀이의 역사성과 고형(古形)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복원된 안양만안답교놀이는 현재까지 전승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8월 7일에 안양시 향토문화재 제8호에 지정되었다. 매년 음력 1월 15일 전에 안양문화원이 주최·주관하는 ‘안양 정월대보름 달맞이 축제’를 통해 놀이에 함께 참여할 수 있으니 이 글을 읽어주시는 시민 여러분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 1989년 제6회 경기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한 안양만안답교놀이의 모습과 2022년 정월대보름 달맞이 축제 연행 모습

안양문화예술회관 시기(1990~1991)

1989년 12월 15일 문화의 지방화 시대에 발맞추어 문화의 전당으로서 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였고, 안양문화원이 있던 안양시립도서관이 신축 건물을 짓게 되면서 1990년에 안양문화예술회관 2층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게 된다.

만안답교놀이에 이어 전통민속놀이를 전승, 보존하기 위해 한마당 민속잔치로서 동 대항 ‘세시풍속놀이’ 대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청소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유적지 순례를 실시하였는데, 이 역시 현재 ‘역사탐방’으로 이어져 문화가족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세시풍속놀이 행사 모습과 유적지 순례 기념 사진

◇ 안양문화센터 시기(1991~1995)

▶ 안양문화원 입주식 및 『안양문화』제8호 출판 기념회

1991년 6월 안양2동 구 시민회관 자리에 안양문화센터가 완공되면서 80여 평의 공간에 사무국, 원장실, 향토민속관, 문화사랑방 등을 설치하며 창립 20여 년 만에 문화공간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향토민속관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기능보유자인 이봉주 씨의 방짜유기, 김재의 옹의 짚 공예품 등을 전시하고, 문화사랑방에 전통예절, 다도예절, 한문글방 등을 운영하며 문화 중심체로서의 역할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또한, 1991년에 안양시의 민요를 조사하여 안양의 농요, 채석노동요, 장례요 등을 조사, 채보하였으며 이중 채석노동요는 1993년 제8회 경기도민속경연대회에 안양시 대표 종목으로 참가하였다. 『석수동 채석노동요 조사연구용역 보고서』(안양시, 2019)에 따르면 안양의 채석장과 채석장 민요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으나, 방치되었고 안양문화원이 안양의 민속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민요를 발굴하고 중요성을 인지함으로써 지역문화유산으로 정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보존, 전승되었고 2019년에 채석장 노동요를 포함하여 논농사소리, 집 짓는 소리, 집안일 소리 등이 안양시 향토문화재 제7호 ‘안양일소리’로 지정되었다.

▶ 제8회 경기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한 ‘채석장 노동요’ 모습

◇ 동안구청 시기(1995~1998)

동안구청이 현대식 건물로 새롭게 옮겨가면서 이상윤 원장의 노력으로 1995년 구(舊) 동안구청 청사로 이전한다. 넓은 공간이었기에 문화원이 일부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은 새마을 단체들, 독립유가족회 등 10여 개 단체에게 무상으로 대여해 주었다. 이외의 남는 사무실을 활용하여 시민들을 대상으로 풍물, 서예, 전통예절, 꽃꽂이, 컴퓨터 교실 등 첫 상설 문화강좌를 운영하였으며, 안양에 있는 각 지방의 도민회와 향우회가 참여하는 ‘재안양 도민회 민속놀이’를 개최하여 시민의 화합과 애향심 고취에 기여하였다.


이 시기의 아카이브 자료를 보면 만안문화제의 일환으로 재현된 어가행렬이 눈에 띈다. 어가행렬은 수원 화산 능행차를 축소한 것으로 정조의 능행차를 위해 축조된 만안교의 역사적 연관성을 바탕으로 정조의 효심과 애민정신을 본받고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1991년 제6회 만안문화제부터 시작한 행사이다. 이때에는 고등학교와 연계하여 배역을 구성하였기에 앳된 모습의 정조대왕을 볼 수 있다. 어가행렬은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가 협력하여 각 구간마다 재현되고 있는 대형 행사로 발전되었으며, 안양시에서는 석수체육공원을 시작으로 만안교, 안양역을 거쳐 구 경찰사거리까지 진행되고 있다.

▶ 제11회 만안문화제 중 어가행렬 모습(1996년)

◇ 안양시농촌지도소 시기(1998~2007)

1998년 안양시 농촌지도소 2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인수하면서 30년 셋방살이를 청산하게 된다. 1층에는 원장실과 사무국을 두고, 2층에는 문화강좌 교실을 만들어 문화강좌를 계속 이어나갔다. 또한, 향토문화 연구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한국문화원연합회의 공문에 따라 2000년에 향토문화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때부터 향토사연구소에서 연구 업무와 편찬 업무를 총괄하며 『안양시 교육 총람』, 『향토체육사』, 『안양의 민속놀이와 세시 풍속』, 『안양집성촌 자료집』, 『안양의 종교 총람』, 『안양의 금석문』 등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현재 산하단체인 ‘안양문화유산해설사회’의 전신인 ‘안양시 문화재 길라잡이’가 결성되었고, 안양시 문화재 홍보 및 해설을 위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소양 교육과 자체적 답사, 토론회를 가지며 타 문화원의 벤치마킹이 되었다고 한다.

2003년 장석재 원장이 취임하며 현재의 시스템으로 변화를 이룬다. 당시 문화원은 사업비에서 시 예산의 10%를 자체자금으로 충당하게 하였는데, 열악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후원금을 유치하는 한편 임원 분담금 및 부원장 5인 체제, 문화가족 제도를 만들어 2004년 지방문화원 관리운영평가에서 ‘자치단체의 재정력에 비해 적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사업 추진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범 문화원, 노력하는 문화원’으로 평가받아 A등급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문화원 뒤쪽 마당에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로 가건물을 만들어 사무실을 이전하고 1층 사무국 자리는 전시장으로 활용하여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북돋웠으며, 구서이면사무소와 함께 문화원 뒤뜰에 전통가옥 모형을 만들어 실제 전통혼례와 전통문화 체험 학습을 진행하여 고유의 풍속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청소년 문화탐구단’을 조직하여 향토에 대한 애향심과 문화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정기 답사와 청소년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였으며, ‘실버문화학교 어린이 전통문화 어르신 보조 강사 육성 프로그램’으로 조손간의 문화벨트를 형성하며 세대 간의 지역문화 전승에도 힘을 기울였다.

-다음 편에 계속-


▶ 기획·글 : 박희은(안양문화원 학예사)

[참고 문헌] 안양문화원, 『안양문화원 50년사』, 2020.

※안양문화원 아카이브의 모든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안양문화원에 있으며, 본 사이트의 저작물에 대한 무단 도용을 금하며, 배포·사용할 경우 출처를 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 안양문화원 031-449-4451